20100312 Luke15:1-3,11-32 法頂의 떠남을 보며
오늘의 말씀 : Lk 15:1-3, 11-32
오늘 생각한 것 :
法頂스님의 죽음은 삭막했던 한국 사회에 생각할 기회를 주는 듯 하다. 그의 입적(죽음)을 전하는 뉴스는 김수환 추기경과 소통했던 것, 이해인 수녀와 소통했던 것도 함께 전하며 칭찬을 한다. 어느 성공회 신부는 길상사에 방문하여 한 승려의 죽음을 조문하며, 자신이 한때 소명 앞에 갈팡질팡할 때 이 法頂스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잡고 사제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질책을 받느라 지친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이중적인 삶의 모습에 실망하고 돌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 뉴스는 한국 교회에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한국교회여, 언제까지 이 사회의 왕따로 존재할 것인가?'
김수환 추기경은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무소유)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한국 개신교 지도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개교회에서 "성경을 소유하고 싶다고 해야지, 중이 쓴 책을 소유하고 싶다고 하냐? 이단아냐? 믿음이 없는 마귀의 종 아냐?"고 외치는 강단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에서 잠잠했다.
한국교회에서 아무리 신실한 목사로 존경받던 이라고 해도, 타 종교 지도자들과 소통하고 방문하고 초청한다면 배교자 비슷한 취급을 하려는 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나님을 버리고, 법정의 글을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같은 시대에 진리를 찾고, 인간을 구원하게 돕기 위한 고민을 같이 하는 이들로 소통하는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 경쟁도 아닌, 그대로 이웃으로 인정하고 교제하는... 그런 가운데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더 깊이 찾아가는 도움이 되는 것인데, 이를 이해해 줄 아량이 없다. 일개 중(?)보다 인생의 의미와 진리를 찾기 위한 고민과 노력, 자기 비움도 덜한 어리석은 자의 무지한 비난과 정죄를 쏟아내는 한국교회의 강단에 세상은 돌을 던지려 하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상종조차 아니하는 세리와 죄인들이 찾아올 때 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음식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셨다. 이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흉보고 정죄한다. 왜 이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 속 한국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오늘의 말씀 속에서 아버지는 자기 분깃을 요구하고 집을 떠난 둘째 아들에게 내어주고, 기다려 주고, 찾아왔을 때 맞아준다. 굳이 용서를 위한 사죄를 요구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고, 다가가 안아주고, 입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준다. 그리고 잔치를 베풀며 즐거워 한다. 하지만, 집에 있던 큰아들은 마땅치 않게 여긴다. 하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분명하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法頂 스님이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입니다.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이 지구를 행복하게 합니다."(2004년 하안거 결제법문 중)라고 말했다고 한다. 본문에서 큰 아들은 불친절하다. 동생이 살아돌아왔는데, 그를 맞아주는 아버지에게 원망한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어떻게 바라볼까? 친절하게 구는 것이 마치 백화점에서 자신의 물건을 사게하려는 점원의 모습으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타종교인이나 세상의 질타를 받는 죄인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마치 큰아들의 모습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불친절..
우리가 참 종교요, 진리라면, 우린 세상이 돌을 던지는 그에게 우리도 같이 돌을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긍휼히 여기고, 그와 같은 인생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어두움 속 이웃을 돌아보고 돕는데 관심을 갖아야 할, 친절을 보일 수 있는 우리가 될 때에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아닐까?
法頂스님의 말씀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물질이 필요없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수 있는데 있습니다"란 말과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란 말일 것이다. 첫번 째 말은 종교를 달리하더라도 이의가 없다. 두번 째 말..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갖게 되는 온세상...', 이를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주님을 소유하게 된다.', '모든 것을 비워낼 때 주님으로 가득 참을 경험한다'는 우리의 진리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法頂스님은 그의 마지막 유언으로 "나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말만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 저렇게 (할짓 다하며) 살면서도 지들은 용서받고 구원받았다고 떠벌린다는 소리를 듣는 목사와 그리스도인인 나,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향해 쌓아놓은 담이 있는 것을 헐고, 소통하면서 도리어 우리의 진리를 더 깊이 찾아가서 주님과 하나되는 삶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